어느 성가대 지휘자의 이야기<펌>

by 김영식 posted Oct 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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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가대 지휘자의 이야기<펌>

 

청년 성가대 단장을 맡았을 당시 매우 열성적이었던 나는

 

들쭉날쭉한 출석률을 잡아보기 위해 지휘자님의 암묵적 허용 하에 단원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임시 총회를 열어 연속 3회 무고(이유 없는 결석)시 탈단 조치를 강행시켰고. 이는 어느정도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사실 무고 3회는 정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지르기 어려운 만행(?)이다.

 

이러저러해서 못나갈것 같다고 얘기만 해도 되니까...

 

그래도 (이러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어느 단체나 그러하듯이- 꼭 한 두명 이탈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후배 여자 단원 한 명이 이 조건에 걸려버리고 만 것이다.

 

솔직히 괘씸하기도 하고 본보기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탈단을 강행했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라고 생각하던 단원들도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으나,

 

난 그게 다 성가대를 위한 길이라 마음을 다잡았다.

 

단장이 되고 여러달이 지난 후 성가대 단원 간 결속력과 출석률이 몰라보게 좋아졌고

 

지휘자님과 단원들도 행동파 단장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몇년 후... 입대로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녀야만 했던 나는 성가대 활동을 잠시 접게 되었고, 가끔

 

몸담았던 성가대 선후배들과 연락만 하고 지내던 터였다. 

 

어느날 내가 탈단시켰던 그 여후배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성가대는 커녕 냉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솔직히 처음엔 나 아니더라도 그 아이는 냉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신심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이가 좀 더 들고 나니 내가 그 때 너무 하느님의 것이 아닌 인간의 것만을

 

생각하고 행동한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많이 하게된다.

 

나만 아니었더라면,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만 않았더라면 열심한 신자가 될 수도 있었을 그 아이가 

 

인간의 것에 실망하여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계속 누릴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안산이라는 동네에 와서 젤 처음 알아본 것이 내가 사는 동네에 성당이 어디며 성가대는 몇개나 있는지였다.

 

결혼은 했지만 나이가 어려 청년성가대를 하고 싶었지만, 성가대가 장년 성가대 단 하나...

 

그래도 너무나 설레는 마음으로 입단하고 열심히 열심히 성가를 불렀다.

 

오랫동안 쉬어 첨엔 힘들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게된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몇번의 분당과 지휘자님들의 교체로 능력도 없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지휘자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지만, 그 분께서

 

도와주시리라 생각하고 여기저기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다.

 

단원 수는 좀체 늘어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실력 만큼은 안산 최고라고 세뇌(^^;)를 하며 즐겁게 기쁘게 봉사했다.

 

 

 

그런데 요즘... 자꾸만 예전 청년시절 행동파 단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나를 발견한다. 

 

모두들 나름의 힘든 일들이 있어서라고 이해하려고 애쓰다가도 출석률 안 좋으신 분들은 은근 미워지기까지 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게 인간인가 보다.  

 

진정한 리더는 자기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고 구성원들이 따르게 하는 사람이라던데

 

우리 성가대가 이리 제자리 걸음인 것이 꼭 내 책임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솔직히 더이상 열심히 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능력이 없어서일까?

 

얼마전 분위기 전환 겸 중창대회를 제안했다.

 

안되는 능력에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고 다들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난 분명 이분들이 서로의 화음 속에 빠져 즐겁게 연습할 줄 알았는데...부담을 느끼시는 듯 했다.

 

사실 아마추어 합창단 또는 성가대의 가장 큰 애로점은 연습시간이다.

 

여러명이고 따로 생업이 있다보니 연습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즐기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의구심이 든다. 이분들은 분명 합창을, 성가 부르기를 좋아하시는 걸까? 

 

지나가는 말로 (절대 농담은 아니지만) "전 매일 연습해도 좋아요"라고 했는데 이분들은 그렇지 않은걸까?

 

연습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걸까?

 

청년 시절 난 내 기준으로 성가대원들을 옭아맸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따르던 단원들은

 

솔직히 (적어도 그 당시엔) 성가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다시는 그런 만용을 부리지 않겠노라고 하느님께 스스로 약속드렸다.

 

진정 성가를 즐기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는데,,, 이젠 잘 모르겠다.

 

범인은 결코 노력하는 자를, 노력하는 자는 결코 즐기는 자를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을 난 철저히 신봉한다.

 

성가 부르기를 즐기고 사랑하는 이가 우리 성가대원 중에 몇 분이나 될런지...

 

 

유명한 광고가 생각난다.

 

"산수유,,,남자한테 좋은데, 정말좋은데, 뭐라고 말도 못하겠고...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이렇게 대입해 보고 싶다.

 

"성가 그리고 합창... 그거 정말 좋은데,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